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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62

갑자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이 당황스럽고 두려워 몇 년만에 새 안경을 맞췄다. 며칠 전에 엄청 마음에 드는 안경을 발견했었지만 55만원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결국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적당한 가격의 전혀 뜻하지 않은 디자인의 안경을 사게 됐다. 내가 정말 이런 모양의 안경을 쓸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좀 부끄럽고 어색하다. 이상하게 요즘 좀 안 보이고 그랬다. 원래 시력이 나쁘진 않지만 난시가 심해서 사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시력이 엄청 안 좋아졌던 거였다. 엄마가 알기라도 하면 기겁할 수준으로 시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난시도 까다로운 각도라고 이러쿵 저러쿵 설명해줬는데 사실 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컨디션에 따라 시력 차이가 많을 눈은 맞다고 했다. 안구건조증도 심하고. 그렇게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나왔는데, 이게 영 .. 2015. 9. 28.
난 아직도 물고기를 키우지 못해 image from unsplash 사실 별 일은 아닌데, 이상하게 그 기억을 떠올리면 뭔가가 목 끝까지 차오른다. 그게 턱, 하고 튀어나오진 않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불편하고 머리가 아파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내가 경험한 첫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때 나는 열대어를 키웠다. 사실 특별히 소중하고 그랬던 건 아니었다. 특별히 키우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왜였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외동딸이었고, 이것 저것 어릴 때 그 또래 애들이 해보는 것들은 어지간히 해봤던 것 같다. 열대어 키우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어느 날 아빠가 사왔던 게 아닐까 싶다. 특별히 애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투명하고 작은 어항에 몽글몽글한 노란 플라스틱 구슬이 예뻤고, 헤엄치는 열대어가 예뻤던 것 같.. 2015. 7. 27.
참 긴 월요일이었다 참 긴 월요일이었다. 여행 다녀온 지 5개월이 됐는데 이제서야 여행의 기록을 모두 정리했다. 순간의 감정과 기억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정리다. 여행은 그렇게 쓰여질 문장의 열 배가 넘는 시간을 간직하러 가는 길이지 싶었다. 새 비행기 표를 끊었다. 여행만 기다리며 일상을 기다리는 직장인이 많다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었다. 여행이 아니어도 충분히 기다릴 일이 많다. 수많은 일이 날 버티게 하지만 굳이 버텨내지 않아도 되는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게 좀 슬펐다. 어쩌면 버텨내기보다 그저 지내는 모양이다. 자리를 세 번째 옮기는 동안 거의 정리 못한 채로 들고 다녔던 짐도 이제야 정리했다. 제대로 뿌리내린 적은 없어도 꽤 애착을 가졌던 시간들이었다. 차마 기억도 못했던 어떤 이름들과 어떤 얼굴들과 어떤 흔적.. 2015. 7. 22.
좋은 사람을 만났어 사진은 얼마 전 여름, 상수동 어귀 "오빠랑 헤어진 이후로, 누가 좋다고 느낀 건 처음이야. 오래도 걸렸네" "이제라도 좋은 사람 찾아서 다행이다. 난 이제야 너 좋아할 떄처럼 누굴 못 좋아하겠다는 걸 깨달았는데." -2012년 7월 어느 날의. 우리 그랬구나. 참 많이 좋아했는데. 헤어지고 한참이 지나서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참 드라마 대사같은 말이다. 그치. 잘 지내지? 그럴거야, 아마. 2015.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