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2013

그들이 사는 세상

by __stella 2013. 1. 20.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수십 번 넘게 본 몇 안 되는 드라마다. 사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으니, 내가 그만큼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이 드라마를 얼마나 아끼고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대체로 좋아하지만 유난히 <그들이 사는 세상>은 참 좋았다. 그래서 한겨레 사이언스 온에 글을 연재할 때 코너 이름도,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으로 지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커피프린스 1호점>을 ‘내 드라마’로 꼽았었다. 그 해 겨울부터 <그들이 사는 세상>도 ‘내 드라마’가 됐다. 생각해보면 여주인공의 입장에 맞춰 드라마를 보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그들이 사는 세상>의 준영이 대사와 내레이션이 그 때보다 더 이해가 된다. 하나하나 콕콕 박힌다. 내가 하도 이 대사와 내레이션들을 읊어대니, 친구 이 모군은 “그만 좀 하라”고 한 적도 있다. 물론 농담조였지만, 여튼 난 그 정도로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아마 시간이 좀 지나 20대 후반이 되면 <달콤한 나의 도시>와 <연애시대>가 더 잘 이해될 거란 생각도 이러한 맥락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은찬이의 시선은 풋풋한 꼬맹이의 그것이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의 준영이의 시선은 참으로 복잡한, 솔직하다가도 방어적이고, 그런 스스로에게서 순정의 새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그런 여자의 그것이었고, <달콤한 나의 도시>와 <연애시대>의 그녀들의 시선은,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언니들의 무언가’를 가진 시선이었기에.


흔히 어른들 말씀에 “동종 업계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난 사실 이 부분이 아직도 의아스럽다. 우리에게 준영이와 지오의 세상은 ‘그들이 사는 세상’인데, 준영이와 지오에게 그들의 세상은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다. 준영이가 극 초반에 헤어진 의사 강준기. 둘은 서로 ‘네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헤어졌다.


난 사실 아직도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다. 아니,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데 ‘옳다’와 ‘그르다’는 없으니까, 아직도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겪어보지 못함에서 오는 이해의 부재에서 감정까지 ‘부재’로 치닫게 되는 것보다야, 어찌 됐든 ‘잘 아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은, 아직 내가 어려서 그런 걸까.


사실, 이해를 못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에게서 떠나 왔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감정의 소멸보다 무서운 건, 이해의 부재다. 더 무서운 건, 이해를 하려는 노력의 부재다. (노력이 감당해낼 수 있는 이해의 영역이 한계가 있을지언정.) 그런데 그 보다 더 무서운 것, 정말 무서운 건, 이해가 안 가도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상대방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건 참으로 무섭다.


이해를 못 하면, 이해를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네가 그만큼 밖에 이해를 못하더라도, 그래서 너와 내가 힘들더라도, 네가 버틸 수 있게, 그리고 내가 버틸 수 있게 행동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걸 못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래서, 많이 반성하고 있고, 미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없어서, 나도 상처를 받았다. 내가 ‘그 세상’에 편입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 세상’에서도 이쪽 세상에 있는 날, 적어도 ‘잊지는 않고 있다’는 확인이면 충분했다. 없었다. 그 확인의 부재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한다 한들 되지 않는 문제였다. 나도, 그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알고 있다. 그 확인의 부재는, 그야말로 ‘생각의 부재’의 결과물이란 것. 그만큼의 신경이 가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알게, 됐다.


아직도 뭐가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언제쯤 알게 될 지조차도 모를 일이다. 다만 확실히 알고 있는 건, 그 ‘확인’ 하나면 다 괜찮은, 그런 감정이, 여기에든, 어디에든, 아직도, 앞으로도 살아있을 거란 사실이고, 아마 내게도, 그런 감정이 앞으로 몇 번은 올 수 있을 거란 사실이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며, 쉬이 누군갈 밀어내지도, 밀려오지도 않을 거란 사실이다.


'기록 >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의 그늘  (0) 2013.05.27
직업과 직장  (0) 2013.05.22
달리기  (0) 2013.05.15
  (0) 2013.01.20
기억의 습작  (0) 2013.01.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