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2015

헌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역겨움에 관하여

by __stella 2015. 7. 7.


그러고보면 난 이승환을 별로 안 좋아하나보다. 그냥 노래가 나오면 듣긴 하고, 이승환 노래 중에서도 좋아하는 몇몇 곡이 있긴하지만,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빌리어코스티의 단독 공연을 두 번 갔는데, 빌리어코스티가 부르는 발라드 메들리에 마지막 곡이 이승환 곡이다. 근데 이 노래는 제목만 몰랐지 지나가며 몇 번 듣고 꽤 좋다고 여겼던 노래다. 찾아들어본 적은 없다. 그 노래는 '내 마음이 안 그래'라는 곡이다.


빌리가 부른게 참 좋긴 했다. 그래서 찾아서 다시 들었는데 원곡도 좋았다. 그런데 듣다가 한 단어에 갑자기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마냥 콱 막히더니 노래에 대한 집중이 다 깨져버려서, 그래서 이어폰을 빼버렸다. 그 단어가 '헌신' 이었다.


아. 헌신이라니. 생각만해도 막 소름이 끼치고 역겹고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 정확한 가사는 '내 헌신이, 내 진심이, 너에겐 불편했구나'다. 그렇다. 뭐. 어떤 사람에겐 이런 사랑이 어마어마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정말 소름끼치도록 싫고 무섭다. 헌신이라니. 헌신이라니... 상대방이 무려 자신의 사랑을 '헌신'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고. 그런 감정을 받아내는 사람에 이입해서 너무 고통스러운데다, 자신의 사랑을 무려 '헌신'이라고 표현하는 자만에 역겨웠다. 


어떤 관계에서도,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을 헌신 혹은 희생, 이라고 표현하는 건 무섭다. 그리고 그런 관계라면 어떤 관계든 하나도 건강하지 않음을. 당신에겐 그게 헌신이었을지 몰라도, 과연 당신의 헌신의 대상도, 그게 헌신으로 느껴졌을까. 그걸 아직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하나도 성장하지 않은 거라고. 

그런데 이쯤 생각하고 나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헌신이나 희생을 경멸하는 건가. 그런 생각. 누군가에게 그만한 사랑이든, 감정이든, 고마움을 받고선 나쁜 역할을 하기가 싫은 거, 그래서 그런 감정을 싫어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 언젠가 <프로듀사>였나, 내가 드라마를 보질 않아서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쓴 글 중에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태어나서 처음' 이라는 한 마디로 시작하는 고백을 했다며,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고백은 그 무엇이 되더라도 무섭다고 쓴 걸 봤다. 그리고 그 말에 정말 구구절절 동의했는데, 어쩜 같은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냥 문득 들었다. 그만한 특별한 존재가 되거나, 그만한 사랑을 받기가 무서운 걸 수도 있다는 그런 것. 내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유가 뭐든 중요하겠어. 헌신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도 이상해. 이상한 거 맞아. 

'기록 >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게 엉망이다  (0) 2015.07.08
긴 긴 밤  (2) 2015.07.08
늘 골목길을 좋아했어 (2015.06.27)  (0) 2015.07.07
중구 명동, 섬 (2015.07.03)  (0) 2015.07.07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0) 2015.07.07

댓글